저녁부터 황사가 심할것으로 예상된다는 화창한 토요일 오후. 종로3가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햇빛을 쬐며 걸었다.
희번덕거리는 눈과 닭잡아먹은 듯한 붉은 물감을 얼굴에 칠하고 검은 머리를 산발한 여자 사진이 크다랗게 쇼윈도우 안에 들어있는 모습을 평범한 두 카메라동호인들이 촬영하고 있길래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쿠사마 야요이였다. 미술관과 달리 갤러리는 선뜻 들어가기가 꺼려지지만 다른이도 아닌 쿠사마 야요이라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한옥건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쿠사마야요이의 DOT로 뒤덮힌 비너스상 세개가 세워져있고 마당을 둘러싸고 ㅁ자 구조 한옥 내부 벽면에 그녀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도트와 그물망으로 그려진 정물 등의 팝아트(?? 실제 앤디워홀의 작품들과 유사성이 많다. 논란이 됐던 작품들도 있다는데 시기적으로 그녀가 앤디워홀보다 앞섰던것 같다) 작품들은 거의 처음 봤는데(내가 아는 그녀의 작품은 주로 강렬한 도트무늬 설치작품들) 모작을 해서 방에 걸어놓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색과 조형이 뛰어났다.


구멍이 여러군데 뚫려있는 박스형 설치작품이 두 개 있었는데 구멍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메트릭스나 큐브같은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처럼 공간을 꽉 채운 거울 조각에 안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이 다각도로 둥둥 떠있다. 머리만 잘 쓰면 청계천 재료상에 주문해서 제작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유심히 상자 밖과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가능 할지는 모르겠고. (다시가서 사진찍어와야지)

이 여자의 전시를 보고 새삼 느꼈지만 (특히 비치되있던 관련 아트북) 미술이나 음악 등 대부분의 예술이란게 60년대를 절정으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졌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의 시시함을 현재의 작가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도 살아서(오랜 정신질환을 앓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는 야요이 할머니 같은 분은 예외가 되겠다. /20080315

“어느 날인가 테이블 보에 있는 빨간 꽃의 패턴 무늬를 보고 있었어요 그리곤 위를 보았는데 천정이며 창문이며 벽이며 결국은 모든 방과 심지어 내 몸까지도 온 세상을 같은 패턴의 무늬가 덮고 있는 거에요 내 자신이 마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회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속에서 다른 것은 전혀 무의미한 존재가 되버리는 것을 깨달았어요..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같았죠. 그 연속적인 빨간 꽃들에게 나의 인생이 뺏기지 않으려면 달아나야 했고, 결국 계단 위로 마구 올라갔죠. 내가 지나간 아랫 계단들은 점차 분리되어 갔고, 결국 발목을 다치며 계단 아래로 떨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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