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쪽으로 3~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쇼키뿔.
우리가 도착하자 자그마한 학교 정문 앞 울타리 너머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흐흐
어색하게 웰캄- 들고 있는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어여쁜 선생님. 아이들이 화환도 걸어주었다. 헤어질 때 저 선생님이랑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아름다운 그녀의 자태와 비교가 되서..





이 작은 마을에 거의 잔치 났다. 사업장을 방문 하는 자원봉사단 등은 종종 있었지만 홈스테이를 하고 간적은 없다고 우릴 반기는 분위기였다.





방글라데시에도 여러 부족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거의 한국사람 같은 외모의 부족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전기가 나가버려서 촛불을 켜고 준비 된 저녁을 담고 있는 현지 선생님들.






국자는 있어도 숟갈, 젓갈은 없다. 드디어 고대하던(나만) 현지식 개시. 전기가 끊긴게 다행이랄까. 손으로 먹기가 불편해서 거의 짐승처럼 게워 넣음. 이러다 전기 들어오면 처참할거라 생각하며 우걱우걱 처 먹었다. 다섯 손가락 쪽쪽 빨면서..
음식을 똘까리 라고 하는데 밥 위에 튀긴 생선과 카레닭과 녹차를 진하게 푼듯한(진짜 그런건 아니고) 국물요리와 오이, 작은 고추 등의 채소가 나왔고 곁들여진 레몬즙을 뿌려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접시에 먹고 싶은것들을 양 껏 담아 조물조물 섞어 주섬주섬 먹었다.






홈스테이가정. 동네사람 다 모였다. 룸메이트님과 이집 저집에서 모여든 아낙네&자녀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물 한 주전자로 몸을 씻고? 땀에 찌든 옷 그대로 잠을 청했다. 양철판 한 장이 벽인 집에 누워 있으니 노숙하는 기분도 들고 동네 아저씨 지나가며 구성지게 뽑으시는 노래 한가락을 자장가 삼아 그렇게 지나간 하루.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구밀도 최고, 혼잡한 교통, 매연, 흙먼지, 악명높은 것들이야 알고 있었지만 정신이 쏙 빠지더라.
교통신호도 없는 혼잡한 거리를 끊임없이 경적 울려가며 역주행 섞어 경주하듯 운전하는 기사님들.
경적만 안울려도 좀 살겠는데 나중엔 그냥 그러려니, 곡예하듯 하는 기사님 운전솜씨에 점점 빠져 들더라는. 브라보-
거의 현지 대중교통만 이용했기에 차를 타러 가기까지 또한 목숨 걸고 건널목도 없는 차도를 이리저리 건너 다녀야 했는데 그 또한 스릴만점. 다카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 바로 동화속 같은 시골 쇼키뿔로 이동하게 되서 다행이었다.



근데 이걸 못타서 아쉽다.







하늘이 무섭도록 파랬다.






















































































































버스를 타고 두시간을 넘게 갔는데 다시 저 덜덜거리는 트럭 비슷한 것을 타고 두시간을 더 가야만 쇼키뿔.

나와 내 룸메이트의 하룻밤을 책임져 준 왼쪽 여학생 조야. 친구들이라고 소개한 두 친구도 모범생 포스가 물씬 풍긴다.
조야는 말투도, 목소리도 놀랄 만큼 예쁘고 상냥하고 친절했다. 예절 교육이라도 받은 아이처럼 열세살 여학생 답지 않게 조숙하고 착한 아이였다.




아저씨는 우리를 싣고




다른 동료들도 짝을 지어 저 여학생 집으로 가고 있다. 내일 아침 학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야네 가는 길에 바라 본 시원한 풍경.




동네 사람들 모여 들고.. 우리는 좋은 구경거리.




머리에 저런 점 있는 아이들이 참 많던데




조야와 되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아주 많이) 나눴다. 조야가 많이 답답했겠지만 조야는 상냥하고 착한 여학생이니까 서로 말문이 막히고 이해 안되는 기색을 보일 때 마다 귀엽게 웃으며 애써 설명해 줬다.
사진으로는 좀 통통해 보이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얼굴도 얼마나 조막만한지 몰라. (우리에 비해서)
평소 조야 아빠, 엄마, 조이 세 사람의 침대에서 오늘은 우리 셋이 잤다. 조야 손 꼭 잡고



조야 사촌의 아내라는 것 같던데. 미인이었다. 나이는 아마 십대일걸로 추측..




조야 엄마의 뒤태. 앞섭과 다리는 철저히 가려야 하지만 등허리가 보이는 옷을 입는것은 괜찮은가 보더라고.




인구의 90%정도가 이슬람인 방글라데시에서 조야는 나머지를 차지하는 힌두교인이다. 예배시간.




불을 피우고 기도를 하고



그 불을 들고 집안 곳곳에 연기를 뿌린다.







조야 동생 악동 조이도 불을 들고 한 몫 한다.








난감할 정도의 말썽꾸러기 조이. 역시 남자아이라선지 카메라에 엄청난 관심을.. 어두운 사진을 보면 렌즈에 찍힌 조이 지문이 그대로 보임.



티비도 좀 보았다. 날씨 방송 중이었나보다.









빠질 수 없는 손님 접대. 귀한 닭고기를 준비해주신 나보다 나이어린 조야 엄마에게 감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들 앞에서 오른손으로 어설프게 주워 먹으며..아주 열심히 먹으며

 


다음날 아침. 나의 룸메이트와 조야네 가족. 집을 떠나며 기념 한 컷. 나랑 동갑내기 아빠는 이미 출근하셨다.















동구밖에선 이미 어제 그 아저씨가 승용차를 대기 중이셨다.









굿네이버스 사업장 중 한 곳 가타일 학교앞에서 조야랑 기념사진. 라마단 기간이라고 하여 학교 수업은 10시에 시작된다고 한다. 아침에 우리는 계란후라이 먹었는데 조야는 아마 아무것도 안먹었을거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조야는 힌두교인이라 아니려나..
조야가 발라 준 조악한 주황색 매니큐어가 아직 왼손 손톱에 남아있다. 흔적만. 매니큐어도 선물로 주고 싶어했는데 나름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지 않을까 싶어 사양했지만..




























문득 울컥하다.
















































































프로그램 중에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입고 있는 티셔츠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바스키아 쯤 되보이는 대단한 재능의 꼬마.
뭘 그렸냐고 묻자,
이 남자는 돈이 없다.. 그래서 슬프다.. 고 했단다.
아디스아바바
고작 몇끼 먹어봤다고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나 에티오피아의 질긴 고기의 정체는 저것인듯..
냉장개념이 있는지 없는지 고기를 저렇게 널어놓고 판다. 말리는 모양이다.


저런 테이크아웃스러운 점방이 많다.


수선집인지 판매점인지..


집에서 닭을 많이 기르는 것 같다. 저렇게 방치된 닭을 많이 봤다.


공동 빨래줄


그리운 에스프레소





미인이 많은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여자들 중 가장 예쁘다는 자부심이 은근 강한 듯 했다.
에티오피아 남자들 사이에서.





한창 우기라 거의 매일 길바닥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진흙에 더럽혀진 `운동화`를 닦아주겠다고 작은 `세탁통`을 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개들도 배고프겠지..





우리나라 6,70년대에 그랬듯 에티오피아도 운전기사가 돈 잘버는 인기 직종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니 파일럿, 드라이버라고 대답한 아이들이 많았다.


이곳은 왠 곳이냐면 김일성 광장이다. 에티오피아 답지 않게 세련되게 잘 가꿔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탑에도 가보고 김일성 광장에도 가보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제대로 느꼈달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김일성 장군이 지으셨다는 탑과 광장이다.
현재도 한국보다 북한이 에티오피아 수교국 순위에서 앞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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